아직 대한민국에 판타지 소설이 낯설었던 시절, 한 작가는 통신공간에서 글 하나로 판타지 소설을 널리 알렸습니다.
바로 이영도작가님의 **<드래곤라자>로, 국내에서 110만부, 일본에서 60만부, 대만에서 30만부나 팔렸던 센세이션한 작품이죠.
지금 소설 시장에선 보기 드문 글로벌적인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책 정보
책이름: 드래곤 라자
글쓴이: 이영도
출판사: 황금가지
출판일: 1998년 5월 30일
총권수: 12권 (완결)
장르: 모험물, 성장물.
배경: D&D 룰에 충실한 중세.
1. 석양의 감시자 아무르타트
헬턴트
는 다른 영지를 이어줄 수 있는 길목에 있지만 시골마을처럼 낙후되어 있습니다.
회색 산맥에 있는 많은 몬스터들과, '석양의 감시자' 아무르타트라는 드래곤의 괴롭힘 때문입니다.
결국 헬턴트 영지에선 국왕의 화이트 드래곤인 캇셀프라임과 그의 드래곤라자 디트리히 할슈타일을 불러들여 제 9차 아무르타트 정벌군을 결성합니다.
드래곤 라자
드래곤 라자는 인간과 드래곤 사이의 소통을 돕는 인간이다.
특별한 자질이 있어야만 되는 선택받은 자다.
이번에야말로 아무르타트를 없앨 수 있다고 기대한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아무르타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소년 후치 네드발과 그의 아버지도 아무르타트의 파멸을 기대하죠.
후치의 아버지는 싸움도 하지 못하면서 원수인 아무르타트의 파멸을 보기 위해 정벌군에 참여할 정도입니다.
▲아무르타트는 후치의 어머니를 죽인 원수이기도 하다.
마을에 남은 후치는 정벌군의 승리를 기대하면서 치안에 공백이 있는 헬턴트 영지에서 임시 경비직을 맡아 장님 마법사 타이번의 조수로 일합니다.
하지만 정벌군은 패했고, 화이트 드래곤 캇셀프라임은 죽게 됩니다.
대부분의 주요인물들은 아무르타트의 포로가 되었고, 아무르타트는 보물 10만셀을 줘야 포로를 석방하겠다고 알려옵니다.
설상가상으로 후치의 아버지도 포로가 되었죠.
찢어지게 가난한 헬턴트 영지는 이 돈을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후치 네드발과 영주의 이복 동생 카알 헬턴트, 그리고 헬턴트 영지의 경비대장 (사실은 오우거) 샌슨 퍼시발은 몸값을 마련하기 위해 바이서스 왕국의 수도로 떠납니다.
2. 마법의 가을
▲온갖 일들을 겪게되는 후치 일행
후치의 시대엔 마법의 가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인생에서 가장 신기한 일들이 가을에 모두 벌어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후치 네드발 일행도 마치 마법의 가을에 들어선 것처럼 여행 도중에 여러 일들을 겪습니다.
여담
<드래곤 라자> 세계관에서 드래곤로드를 물리치고 인간의 나라를 세운 루트에리노 대왕도 마법의 가을에 이런 일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여행과정에서 바이서스와 전쟁 중인 자이펀의 음모와, 바이서스 내부의 적의 음모와 맞딱들이게 됩니다.
동시에 바이서스를 파멸로 부르게 될 비밀도 알게 되고, 바이서스를 건국했던 영웅 루트에리노와 대마법사 핸드레이크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처음엔 헬턴트 영지를 구하기 위해 돈을 마련하려던 여행이 점점 무거운 의미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3. 개성 있는 캐릭터와 유머코드
<드래곤라자>의 캐릭터는 개성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독자들에겐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평가할텐데, <드래곤라자>가 히트한 뒤로 드래곤라자의 캐릭터를 본따 수 많은 작품에서 쓰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방랑하는 왕자라던지, 사연 있는 여자도둑이라던지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도 놀라운 건, <드래곤라자>의 캐릭터가 1인칭 시점인 작품임에도 살아있는 인물처럼 다가왔다는 겁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조화롭다.
1인칭으로 장편소설을 쓰면 여러가지 제약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한 사람의 시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주변이 함몰된다는 점이죠. 1
하지만 이영도 작가님은 신인작가의 패기[!]로 그 단점을 이겨냈습니다.
▲몸값 마련은 출발선이었고, 여러 일들을 겪으며 등장인물들이 엮이게 된다.
바로 <사람과의 관계>가 조화롭기 때문인데 놀라울 따름입니다.
네리아와 운차이의 환상적인 호흡이나, 후치와 샌슨의 악동콤비, 엑셀핸드와 아프나이델의 꺽다리와 난쟁이 콤비 모두 좋았습니다.
그 외에도 90년대에 쓰인 작품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유머코드도 꽤나 괜찮았습니다.
다만 요즘 태어난 독자들에겐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라고 봅니다.
유머코드에서만큼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도 있겠네요.
4. 아직은 미숙한 문체와 독창성
이영도 작가님은 <드래곤라자>가 처녀작입니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한계가 보였는데, 대표적으로 미숙한 문장이 있습니다.
~대하여, ~대한 같은 번역체도 많이 쓰였고, 문장 구성 자체를 비대하게 해서 가독성을 침해했습니다.
속된 말로 쌈박하지 못했다고 할까요.
만약 드래곤라자가 유쾌한 소설이 아니었다면, 이런 요소는 치명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2
그리고 드래곤라자는 톨킨의 소설인 <반지의 제왕>과 D&D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이영도 작가님은 단순히 그런 소설을 가져온 게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녹여들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3
그래도 이영도만의 무언가를 보여주기엔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꼭 <드래곤라자>의 문제라기보단 이영도 작가님의 성향이 작용한건데, 이영도 작가님은 좀 더 현실밀착적인 작품을 씁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장르소설 작가의 경우 캐릭터를 멋있게 보일 수 있게 해주는 장치를 써서라도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게 장치를 해놓습니다.
하지만 이영도 작가님은 천성적으로 이런 것을 싫어하시는 것 같더군요.
이 부분은 도회화된 요즘 독자에겐 촌티난다는 평을 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나는 단수가 아니다
후치 일행은 마지막까지 위기를 겪으며 결말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그 결말을 관통하는 화두를 정의하자면 '나는 단수가 아니다.'입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일생동안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살며, 다른 사람들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동시에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며, 점점 변화해야만 하며, 부족함을 인식하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때 진정한 사람으로서 발돋움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잘 나타난 것이 아래의 글입니다.
흔히들 좋아하시는 명언 부분도 아니고, 조금 긴 글이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자네에겐 그 소녀, 레니가 중요한가?」
「예……, 그래요.」
(중략)
「그렇다면 결정하게. 레니와 자네 둘 중의 하나만 나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예?」
「레니와 자네 둘 중에 하나는 카르 엔 드래고니안에서 생명을 끝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네. 그러니 선택하라는 것이야.」
순간 울화가 치밀어오르면서 떨림은 사라져버렸다.
나는 차분히 그를 바라보았다.
(중략)
「당연히 레니를 내보내라는 거지요.」
「이유는?」
난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자, 진정해. 진정하라구. 난 나 스르로도 놀랄 정도로 낮고 차갑게 말했다.
「내가 나가면 난 죽는 것이지만 레니가 나가면 난 사는 거니까.」
드래곤 로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칼만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그 끄덕임은 내게 힘을 주었다.
난 말했다.
「레니가 나가지 않으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요. 예, 그래요.」
「그래? 하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이지 자네가 죽는 것이 아니잖은가.」
난 한심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중략)
「나라는 것은, 나라는 것은 이 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모든 것들에 다 내가 있어요. 그것이라구요! 그 모든 것을 모았을 때 내가 있는 거라구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요. 그것이 인간이에요!」
-드래곤라자 7권 275~279페이지까지.
만약 한 학생 A가 있다고 합시다.
학교가 사라지면 학생으로서의 A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학생 A의 가족이 사라진다면, 가족구성원으로서의 A도 사라집니다.
만약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단수가 아닙니다.
<드래곤라자>를 읽고 가장 많이 생각해본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6. 전체적인 감상
<드래곤 라자>는 인터넷 상에서 굉장히 논란이 되는 작품입니다.
굉장한 히트를 기록한 책임에도, 재미만을 추구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일부 독자들은 드래곤라자가 재미없는 책이라고 비판하며, 일부 독자들은 드래곤 라자가 철학을 담았는데 비판하는 사람들은 책을 볼 줄 모른다고 비판하죠.
저의 경우 드래곤 라자는 오히려 철학부분 때문에 재미가 저평가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 소설은 철학을 담은 책이야'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보다보니 진정한 재미를 음미하지 못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단언하건데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담은 소설이라도, 재미가 없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개인적으론 <드래곤라자>가 전체적으로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고, 부담 없이 읽으면서도 조금은 진지한 생각을 도와주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작품구성이 탄탄하고, 여러 사건이 얽혀있는 형태로 진행되어 안정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유하자면 화학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현재의 장르소설은 자극적인 소재와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작가분들이 배려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작품에 익숙해진 분들에겐 <드래곤 라자>가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걸 모두 고려해서 제 점수는 5점 만점에 3.75점 입니다.
평가항목
대중성: 4점 (대중적인 소설입니다.)
가독성: 4점 (문제점도 있으나,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기본기+참신함: 3점 (기존의 세계관 차용, 미숙함이 있는 편입니다.)
책이 주는 감동: 4점
P.S 드래곤 라자의 10주년 기념으로 이영도 작가님은 <그림자자국>이라는 외전을 써냈습니다.
P.S2 드래곤 라자는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고,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어진 적도 있으며, 만화책과 양장본으로 나온 적도 있습니다.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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